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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스북 펌] 기생 논개의 진실

어빈2 2021. 10. 4. 1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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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스북 진명행의 역사저널 글 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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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진주시가 논개축제 행사의 일환으로 어린이들에게 적장을 끌어안고 절벽 아래로 몸을 내던지 포퍼먼스를 했다가 비난이 일자 중단한 적이 있다.

 

조선에서 이런 비인간적, 비교육적인 일들이 버젓이 발생하고 있는 이유는 몽매한 전근대적 역사인식이 잔류하고 있는데 기인한다. 어디까지가 역사이고 신화인지 구분할 능력도 없으면서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가 없다"며 개솔이들을 작렬하고 있지 않은가 말이다.

 

논개는 실존인물이 아닐 뿐더러, 당시 진주성 패배를 정신승리하기 위해 민간에의해 가공된 구전설화 속 인물일 뿐이다.

 

논개라는 이름의 논(論)은 이두식 표현이며, 본래 여자 이름에 개(介)를 쓰는 경우는 노비급의 천출일 가능성이 매우 크다. 화류계의 기명으로 사용하기에는 매우 부적절한 이름인 것이다.

 

혹자는 논개가 장수현감으로 재직했던 최경회의 첩으로 실존인물이라고 하는 모양이다. 사료에 따르면 최경회가 장수현감으로 있다가 무장현감으로 발령난 것이 1579년 3월인데, 그럼 18세에 투신한 논개는 만 3살때 그의 첩이되었다는 것 인가? 시바르, 택도 없는 소리들을 하고 있어.

 

논개의 설화가 역사적 팩트가 될 수 없는 몇가지 근거들을 얘기해보자.

 

(1)  촉석루의 기생파티?

 

촉석루는 2차 수성전의 과정에서 불타버린 것을, 광해10년(1618년)에 남이흥(南以興)이 중건한 것이다. 즉, 촉석루는 이미 소실된 상태였고, 이는 성여신(成汝信)이 편찬한 진양지(晋陽誌)에도 “계사년(1593) 병화로 인해 소실되었다."고 나오며, 선조 실록(수정본) 26년 1일자 기사에도 진주성이 왜군에 함락되자 김천일, 최경회, 고종후 등이 촉석루에 불을 지르고 자결을 시도했다는 내용이 나온다.

 

왜군은 전군을 동원하고도 어렵사리 진주성을 함락시켰고, 그 타격이 만만치 않은데, 불에타서 없어진 촉석루에서 잔치를 벌였다는 것인가?

 

(2)  왜장 게야무라 로쿠스케(毛谷村六助)와 함께 투신?

 

문헌 및 진주민요 등에 나타나는 논개가 죽인 왜장의 이름은 왜장, 적장, 왜추, 적수, 아니면 왜 또는 적, 청정, 평수길(平秀吉), 다치바나 무네시게(立花 宗茂), 석종노, 성종노, 하라복 등으로 다양하게 나타난다.

 

여기 등장하는 이름중 실존하는 이름은 청정과 풍신수길, 다치바나 무네시게(立花 宗茂) 정도이며, 나머지는 근거가 없는 허명이다. 가등청정, 풍신수길, 입화종무는 모두 일본에서 죽었으므로, 이 기록들은 모두 위서이다.

 

논개가 죽인 왜장이 게야무라 로쿠스케(毛谷村六助)라는 주장은 소설가 박종화와 정비석에 의해 비롯되었다. 논개와 관련하여 가장 허언을 많이 퍼트린 작자들이다. 현재 일본에서는 게야무라 로쿠스케의 사망장소를 함경북도와 울산, 그리고 일본의 고향 등 3가지로 의견이 나뉘어져 있다.

 

논개의 죽음을 실화한 자는 경상우병마사 최진한이다. 그는 촉석루 인근 바위에 새겨진 ‘의암(義巖)’과 "어우야담"을 근거로 논개의 행적을 인정하고 포상하기를 청한다.

 

그러다 영조16년(1740) 남덕하(南德夏)가 논개를 비롯 순국한 21명의 의기를 기리자며 장계를 올려 마침내 윤허를 받게 되고, 떠도는 이야기의 주인공에서 역사를 행하는 ‘의기’ 논개로 기록된다.

 

진주지방 지역 세족들의 권력욕에 의해 탄생한 날조의 역사를 오늘날까지 답습하고 있으니, 참으로 답답한 일이 아닐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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