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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스북 펌] 자본주의는 적자생존의 극복이다

어빈2 2021. 9. 7. 0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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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스북 한정석 미래한국 논설위원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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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 사회는 약육강식의 세계일까.

 

우리는 흔히 TV에서 '동물의 왕국'같은 것을 보며 '자연의 세계는 약육강식'이라는 말에 공감한다.

 

하지만 그런 생각은 진실(Truth)이 아니라, 인상(Impression)에 불과하다. 만일 자연이 진정으로 약육강식의 세계라면 초 원의 가젤은 이미 다 멸종했어야 한다.

 

가젤들 중에 약한 개체가 사자에게 잡혀 먹기에 약육강식이라면,

사자들도 자기들 끼리 경쟁하고 하이에나와도 경쟁하고 표범이나 늑대들과도 경쟁해야 한다. 굶어 죽는 사자도 있다는 것 이다.

 

자연은 약육강식의 세계가 아니라, 적자생존의 세계다.

강자라도 환경에 적응 못하면 그 개체는 도태되는 것이 자연이다.

5천만년 전에 공룡은 최상의 포식자였지만, 지구환경의 변화로 도태되고 오히려 약자인 포유류의 전성기가 왔다는 것이 정설이다.

 

그렇다면 사회는 어떨까.

사회도 자연처럼 약육강식이 아니라, 적자생존의 구조다.

자본주의가 아닌 사회는 적자생존이 아니라 그 무슨 다른 원리가 있을까?

 

좌파들이 찬양하는 쿠바와 같은 나라에는 적자생존이 없을까. 당연히 있다.

 

적자생존은 경쟁을 기본으로 한다.

경쟁없는 적자생존은 없다. 환경과 리소스는 유한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회주의 소련에서 적자생존을 위한 경쟁은 '줄서기'였던 것 아닌가. 영하 30도나 되는 겨울 아침에 3시간 전에 나 와 빵과 소세지파는 국영상점 마가진앞에 줄서는 경쟁이 바로 소비에트의 적자생존 원리였다.

 

탈북자들의 증언에 의하면 북한에서는 천리마 운동 때에 집안에 젊은 남자들이 많은 가정이 의무 할당 생산력이 높아 더 많은 배급을 탈 수 있었고, 딸만 있는 가정은 배고픔을 면치 못했다. 이것도 적자생존의 원리였다.

 

자본주의 시장경제는 사회주의와는 달리, 이 적자생존을 더 수월하게 만든다.

부자들이 더 많이 나올 수록, 가난한 이들이 굶지 않고 일하거나 기부를 받을 수 있는 낙수효과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국가는 부를 생산하지 못한다.

정부가 창출하는 부가가치는 민간이 할 수 있는 걸 자신이 하는 것에 불과하다. 민간이 창출할 수 없는 부는 정부도 하지 못한다. 이게 진실이다.

 

정부가 민간의 리소스를 가져다가 부를 창출하는 것은 결국 관치의 비효율과 낭비를 초래한다. 민간은 실패하면 더 나은 민간에 인수합병되든지, 다른 방법을 찾아 내지만, 정부는 정책의 실패를 인정할 수 없기에 규제로 대응하게 된다. 사회주 의가 망하는 메커니즘이다.

 

이런 사회주의가 마치 우리를 약육강식에서 구원해 줄 것 처럼 한국에서 박수를 받고 있다.

 

하지만 그 결과는 또 다른 적자생존의 구조를 만들 뿐이다. 누가 더 정부나 정치권에 가까이 줄 서냐는 경쟁으로...

그 결과, 후진국들에서처럼 부익부 빈익빈은 더 벌어진다.

 

비효율적인 정부보다, 효율적인 시장에 줄 서는 것이 약육강식을 피하고 적자생존의 경쟁을 더 완화하고 수월하게 하는데 정답이다.

 

시장경제는 승자독식의 유일한 균형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여러 다균형 점을 만든다.

 

공급자와 소비자들이 서로 재화와 서비스의 차별화를 시도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렇게도 먹고 살고, 저렇게도 먹고 사는 것이다.

 

문제는 욕심이 아니라, 불만이다.

그 불만을 해결할 동기나 의지도 없으면서 말이다.

 

불만이라는 것은 그래도 지금 먹고 살만하다는 이야기다. 절박한 이들에게는 불만도 사치다.

 

배급받기 위해 줄 서보면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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