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책

[책리뷰] 언더그라운드 - 무라카미 하루키

어빈2 2025. 3. 12. 1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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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무라카미 하루키
평점 7

개요


무라카미 하루키는 일본을 대표하는 현대 문학 작가로, 독특한 문체와 몽환적인 스토리, 그리고 철학적 주제를 결합한 작품들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다.

1949년 교토에서 태어나 와세다 대학에서 연극을 전공하였다. 대학 시절 재즈 바를 운영하다가 1979년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로 군조신인문학상을 받으며 작가로 데뷔하였다.

이후 세계적으로 독자층을 확보하며 노벨 문학상 후보로 자주 거론되고 있다.

- 챗 gpt의 '무라카미 하루키는 어떤 작가야?'에 대한 답변

이 책은 1995년 도쿄 지하철 사린가스 살포사건이라는 실제 벌어졌던 사건에 대해 다루고 있는 르포다. 소설이 아니라 당시 사건의 피해자 중에 인터뷰에 응한 사람들의 인터뷰를 죽 모아놓은 책이다.

일종의 구술사학이며 백서의 성격을 갖고 있으며, 이 사건에 관심이 많은 사람은 꼭 읽어봐야 될 책이기도 하다.

내용

도쿄 지하철 사린 사건

때는 1995년 3월 20일. 월요일. 기분 좋게 맑게 갠 이른 봄날 아침이었다. 바람이 아직 차가워서 거리를 지나

namu.wiki


1995년 일본 도쿄 지하철에 독가스인 사린가스가 일본의 사이비 종교 '옴진리교'에 의해 살포되었다. 이 사건으로 14명이 사망했으며 수천명이 사린가스 중독으로 피해를 받았다.

나무위키에 따르면 인류 최초이자 현재까지 유일하게 대량 살상무기를 사용한 테러사건이라고 한다.

이 사건에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는 지대한 관심을 가졌으며, 1년이 지난 시점인 96년에 수 천명의 피해자 중 인터뷰에 응한 사람들의 인터뷰를 직접 진행하고 편집하여 이 책을 발간하게 되었다.

그래서 이 책은 기존 하루키의 소설과는 아예 다른 장르로, 피해자의 증언을 700페이지 가까이 나열하고 있어 현장에 있던 사람들이 사건을 어떻게 바라보고 어떻게 반응하였는지를 잘 알수 있는 1차사료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유일하게 작가의 생각이 아주 강력하게 들어간 에필로그가 있는데 하루키가 이 사건을 어떻게 인식하고 왜 이 책을 쓰게되었는지를 잘 설명하고 있다. 더 나아가 이 부분에서 하루키가 세계를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지, 어떤 문제의식을 갖고 있는지도 볼 수 있는 상당히 중요한 부분이기도 하다.

느낀점


1차 사료로서 이 사건에 관심이 많은 사람한테는 필독서이다. 그러나 이 사건에 아무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면, 하루키의 팬이어도 이 책은 지루할 수 있다. 그러다보니 이 책은 평점을 매기는게 별 의미가 없는 책이다. 심지어 증언들만 모아놨기 때문에 어떤 소설적 감흥도 잘 느낄 수 없는 책이다(그럼에도 하루키답게 재미있게 구성해놨다. 아마 더 재미있게 구성할 수 있었겠지만 사건의 성격상 자제한 느낌도 든다). 오히려 평점을 매긴다면 에필로그만 보고 평점을 매길수는 있을 것 같다.

나는 2018년 이 사건의 주모자인 아사하라 쇼코 옴진리교 교주가 사형당하는 뉴스를 보고 처음으로 이 사건을 알게되었다.

당시 업무중 하나가 매일 뉴스를 보는 것이었어서 국제 뉴스도 보곤 했는데, 일본에서 실제 사형을 집행했다는데 놀라움을 안고 뉴스를 눌러보니 정말 엄청난 사건이 있었고 사건이 일어난지 20년 만에 사형이 집행되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이런 책이 있는지는 몰랐으나, 이번 독서 토론 덕에 접할 수 있어서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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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키가 직접 인터뷰를 진행한 이 책은, 모든 인터뷰를 모은 책들이 그러하듯이 여러가지 장점도 있겠으나 단점도 다분하다.

장점으로는 현장의 생상한 체험을 들을 수 있다는 것, 또한 사건을 겪은 당사자들이 각자 개인으로서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통해 시민수준과 일본이란 사회의 시스템을 민초로부터 점검해볼 수 있다는 점이 있다.

반면에 단점으로는

1) 인터뷰하는 사람이 인터뷰어가 듣고싶은 얘기를 하는 경향이 있다.
2) 이 책에는 상당히 영웅적이거나 또는 도덕적인 사람들만 나오는데, 급박한 상황에서 누구를 밀치거나 뿌리치고 뛰쳐나온 사람같이 스스로 도덕적 부끄러운 사람이 있는 사람은 인터뷰에 응하기 쉽지가 않아 사건을 객관적으로 조명하기 쉽지 않다.

도쿄 사린가스라는 사건의 백서가 있다면 이 책은 챕터 4 피해자들의 증언 파트에는 들어갈 수 있지만, 이 책을 통해 사건 전체를 파악하기는 그래서 어렵다. 그리고 이는 모든 구술사학이 갖고 있는 한계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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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증언들 중 가장 인상깊었던 것은 아리마 마쓰오라는 사람(가명인지 진명인지는 알 수 없음)의 증언이었다. 그는 평소에 마루노우치 선을 잘 타지 않지만 하필 그날 마루노우치 선을 탔다가 사린 가스 피해를 당했다고 한다.

그의 말 중에 가장 인상깊었던 것, 사실상 그것이 나중에 언급할 에필로그의 하루키 문제의식의 답이며 이 책이 우리에게 주는 가치라는 생각이 들었다.

앞으로 일본 사회는 개인이 좀 더 강해져야한다는 나름의 결론을 내렸습니다. 사회생활을 한 지 십년이나 되었으니 생활은 안정된 편입니다. 젊었을 때는 이상한 일이 있으면 "이건 이상하다!" 하며 직설적인 발언을 했지만 사회 경력이 쌓여가면서 점점 그런 의식이 없어졌습니다.

옴진리교에는 그렇게 우수한 인력들이 모여있었지만 결국 집단 폭력으로 치달았습니다. 그건 아마도 개인이 약하기 때문이 아니었을까요.

p 143
'이렇게 쇼를 보는 것 처럼 방관해도 되는걸까?' 아리마 미쓰오의 증언

개인이 약한 사회, 진정한 개인이 없는 사회.

이 사건에서 가장 미스테리는 도대체 왜 사린가스를 살포하는게 문제인걸 알면서도 가해자(가해자는 총 5명이다. 5명이 각기 다른 노선의 지하철을 타고 사린 가스를 살포했다)들은 교주 아사하라 쇼코에 저항하지 않았냐는 것이다. 즉, 왜 악은 진부하게, 너무나 평범하게 벌어지는 것인가?

다행히 한나 아렌트는 여기에 대한 답을 내놨다. 바로 '무사유' 때문이란 것이다.

생각하지 않는 '무사유'의 인간이 악의 평범성을 만들어낸다는 말이기에, 이 반댓말은 바로 스스로 생각하고 도덕적인 판단을 할 수 있는 '진정한 개인'이다.

진정한 개인이란 무엇일까? 무엇이 진정한 개인됨이며, 훌륭한 개인인가?

그것은 사람마다 정의하는 바가 다르겠으나, 내가 그나마 생각한 것은, 진정한 개인은 '진실을 향한 강력한 열망'에서 나온다는 것이다.

쇠렌 키에르케고르에 따르면 진실은 오직 개인에게 있으며, 공중/떼거리에 진실이 있을 수 없다고 한다. 진실은 느리고 때로는 입에 쓰며, 천천히 스며든다. 그러나 대중은 한 쪽으로 쏠리고 입에 쓴 진실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경향을 보이기 때문에 진실이 떼거리에 멀쩡히 안착할 수 가 없는 것이다.

쉬운 예로 현재 윤석열 탄핵을 가지고 찬성 반대 집회가 많이 열리는데, 어디든 가서 그들의 주장에 조금이라로 반대되는 진실을 얘기해보라, 맞아 죽을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진실은 오직 개인에게만 있고, 진정한 개인이란 진실을 추구하고 갈망하는 존재를 뜻한다.

그럼 한나 아렌트가 아돌프 아이히만을 관찰하면서 느꼈던 악의 진부성, 왜 무사유의 인간이 발생하는가?

개인이 생각하기를 포기하고 집단이 제시하는, 더 정확히는 집단의 리더(총통이던 교주이던)가 제시하는 하나의 완결성을 지닌 서사 또는 도덕률을 받아들임으로써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악을 마치 일상생활 하듯 평범하게 행하는 부속품과 같은 인간이 태어나는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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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키의 문제의식도 여기에 있다.

에필로그 <지표없는 악몽> 파트는 하루키가 왜 이 사건에 관심을 갖고 있는지, 사건의 본질을 어떻게 보고있는지 잘 나와있다.

옴진리교에 귀의한 사람들 중 대부분은 아사하라가 수여한 '자율적 파워 프로세스'를 획득하기 위해 자아라는 귀중한 개인자산을 아사하라 쇼코라는 '정신은행'의 대여금고에 열쇠째 맡겨버린듯 하다.

충실한 신자들은 자진해서 자유를 버리고, 재산을 버리고, 가족을 버리고, 세속적인 가치판단 기준(상식)을 버렸다. 정상적인 시민이라면 '무슨 그런 터무니없는 일이'하고 어이없어할 것이다.

그러나 그들에게 그것은 어떤 의미로는 지극히 마음 편한 일이다.

왜냐하면 일단 누군가에게 맡겨버리기만 하면 일일이 혼자 고생해서 생각하며 자아를 컨트롤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p 708 <지표없는 악몽>


하루키가 피해자들 증언 챕터마다 앞에 간략하게 테러를 실행했던 옴진리교 신자에 대한 얘기를 하는데, 이들 대부분은 사린가스 살포가 문제인걸 알면서도 저지른다. 이에 대한 분석을 하루키는 바로 아사하라 쇼코가 만들어낸 완결성을 지닌 '자율적 파워 프로세스'에 의탁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는 나치즘, 공산주의, PC주의 등 전체주의적 '파워 프로세스' 무엇으로든 치환될 수 있으며, 바로 이런 완결성을 지닌 강력한 서사가 바로 무사유의 인간을 만들어낸다.

공산주의를 예를 들면,

공산주의의 도덕철학은, 인간은 계급투쟁의 피비린내나는 역사속에서 스러져가는 존재라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공산주의의 정치철학은, 계급투쟁의 역사를 끝장내기 위해 공산주의자-프로레타리아가 들고 일어나 더 피비린내 나는 혁명을 일으켜야 한다는 것이다. 오직 이것만이 인간에게 의미 있는 일이기에 공산주의의 미학, 즉 여기에 기여하는 미술, 문학, 음악만이 아름다운 것이 된다.

이렇게 3박자의 완결성을 갖춘, 하루키의 표현을 빌자면 '자율적 파워 프로세스'라는 완장을 차게되면 이제 무사유의 인간, 집단을 이루고 악을 아무렇지 않게 행하는 존재가 탄생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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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해결책은 무엇일까?

하루키는 재미있게도 한걸음 더 나아가 해결책을 묻고 있다.

그러나 그에 대해 '이쪽'의 우리는 대체 어떤 유효한 이야기를 제시할 수 있을까?

아사하라의 황당무계한 이야기를 떨쳐버릴 수 있을 정도의 힘을 가진 이야기를. 서브 컬쳐 영역에서건 메인 컬쳐 영역에서건 과연 우리는 가지고 있을까?

p 712

즉 옴진리교 신자들을 집단적 광기로 몰아넣었던 아사하라 쇼코의 서사는 분명 어처구니 없는 '자율적 파워 프로세스'였지만, 이것이 오히려 아이히만 같은 사람을 양산하는 폭력성과 흡입력을 가진 서사라면, 이를 방어하기 위해 과연 우리는 어떤 서사를 갖고 있어야 되냐는 것이다.

이에 대한 대답이 바로 아리마 마쓰오의 증언 '일본 사회는 개인이 보다 강해져야 한다라고 생각합니다'가 되는 것이다.

이런 문제의식은 키에르케고르와 니체로부터의 역사 깊은 물음이고, 이에 대한 대답은 바로 진실에 대한 정직성, 진실을 추구하는 자세라는 것이다.

모두가 yes 할 때 no라고 말하는 인간이 되라는 광고 카피는, 그 no가 진실을 담고 있음을 전제하고 있는 명제다.

그럼 우린 또 물어볼 수 있다.

"아니 모두가 yes하는데, 모두가 히틀러의 명령을 따라 yes 하고 있는데 NO라고 할 수 있습니까? 죽을수도 있다고요!"

사실이다. 그래서 해결책이란 동전의 앞 면은 바로 국가가 이런 전체주의적 시스템을 만들지 않는데 있다.

전체주의적 시스템이라고 하니 먼 소리 같지만, 한국에 빗대어 보면, 5.18역사왜곡 금지법, 위안부에 관한 법 등 입을 틀어막는 법들, 경제적 자유를 제한하는 법들, 인간의 행동을 국가가 정해준 '선'에 끼워맞추려는 정책 모두가, 즉 사회주의적 또는 공동체주의적 국가 정책 모두가, 바로 전체주의라는 '선의로 포장되어있는' 지옥으로 가는 길이다.

괜히 표현의 자유가 하나의 도덕률로써 다뤄져야된다는게 아니다.

해결책이란 동전의 뒷면은 바로 하루키의 물음, 우리가 어떤 서사를 가져야 된다는 것이다.

아사하라 쇼코 등 누군가가 강력한 서사를 가지고 집단을 형성하고 있다면, 이에 현혹되지 않기 위해 우리는 진정한 개인, 강한 개인이라는 답을 제시할 수 있다.

그런데 진정한 개인, 강한 개인이 도대체 뭔데? 그 개인의 태도가 진실 추구인건 알겠는데, 진실 추구의 서사가 도대체 뭔데?

가장 쉬운 대답은 전통적이고 관습적인 것으로, 바로 가족을 갖고 가장으로서 책임을 다하고 사회의 시민으로서 책임을 다하는 자유로운 시민이 되라는 것이겠다.

그러나 사실 삼위일체의 완결성을 갖는 강력한 도덕적 완장들의 대척점에 개인의 근본적인 자유를 댄다면, 이는 하이에크 선생의 말마따나, 자유는 사람을 선동할 수 있는 힘이 부족하기에 늘 질 수 밖에 없다는데 나도 동의한다.

왜냐하면 흡입력 강한 서사는 분노, 차별, 불공정 등 인간이 발작할 수 밖에 없는 구조를 갖고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쪽' 서사로 96년의 하루키에게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이것밖에 없는데, 이 또한 오래전부터 내려오던 정언명령이다.

'자유는 공짜가 아니며 그러한 자유는 피를 먹고 자란다. 피를 먹고 자라는 자유의 속성이 싫다면, 부자유에 굴종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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