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배석만
평점 6
개요
이 책은 귀속재산 : 일제가 남겨두고 간 공공 및 민간 재산이 해방 이후 한국에서 어떻게 처리되어 왔으며,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를 간단하게 서술한 글이다. 귀속재산의 연구 동향도 언급하고 있다.
원래는 이대근 박사의 <귀속재산 연구(2015)>라는 책을 읽고 싶었는데, 박사가 참으로 예전 분이신지 2015년에 나온 책의 절반 이상이 한자로 쓰여있어 엄두가 안나 차선으로 구한 책이다.
내용
4부로 구성되어있다.
1부는 귀속재산의 개념과 규모, 현재 연구 현황과 쟁점을 소개하고 있다.
2부는 해방 이후 미군정이 3년간 귀속재산을 어떻게 관리했는지를 서술한다.
3부는 정부수립 이후 귀속재산이 어떻게 처리되었는지를 다루며,
4부는 1960년대 이후까지도 미처리 된 재산들이 어떤 문제를 갖고 있으며, 현재는 어떤지 밝히고 있다.
1부 귀속재산이란
귀속재산이란 일제가 패전한 시점에서 한반도에 일본 정부와 기관, 일본인 개인과 법인단체가 소유하고 있던 공적, 사적 재산 일체 중 미군이 점령한 38선 이남의 재산을 의미한다.
귀속재산의 규모는 정확히 파악되지 않는데, 재산의 카테고리에 따라 매우 다르기 때문이다. 대표적으로 귀속 공장의 경우 전체 공장의 28.4%(5,532개 중 1,563개)며 종업원 수는 52%(17만명 중 9만명)이었다고 한다.
귀속재산에 대한 연구는 70년대를 초창기 연구로 하여 현재도 계속되고 있다.
70-80년대 연구는 귀속재산의 실체를 밝히려는 연구 보다는 이 재산이 압도적 비중을 가진다는 전제 하에 그것이 해방 이후 어떻게 처리되고 한국 경제에 어떤 역할을 하였는지를 설명하려고 하였다. 정부 관리 실패에 따른 유실, 한국전쟁에 의한 파괴, 권력 유착으로 인한 특권층 및 대자본가 성장 등 한국 자본주의의 천민성을 지적하는 근거로 사용되었다.
왜냐하면 귀속재산의 규모가 클수록 일제 시기 일본의 수탈을 강조할 수 있고, 비중이 빠르게 축소되는 과정에서 정경유착 등의 공격 논리로 사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를 통해 미군정과 이승만의 실패를 강조하였다.
이후 연구는 앞선 연구가 과연 사실인지를 증명하는 연구였다. 이를통해 귀속 재산이 남한 재산 전체의 80%라는 식의 주장은 과장되었다는 것을 밝히고 한국전쟁으로 인한 파괴나 정경유착을 통한 유실 등에도 불구하고 한국 경제에 어느정도 이바지 하였다는 연구가 이루어졌다.
현재는 과거의 연구 결과인 귀속재산이 한국 경제 발전에 큰 역할을 하지 못하였다는 주장은 옅어졌으며, 다만 그 정도와 관련해서는 다양한 논의가 진행중이다.
2부 미 군정의 접수 및 관리
미군이 남한 점령을 한 이후 남한 내 일본 정부, 공공기관의 공적재산과 일본인 민간 재산에 대한 최초 방침은 '동결'이었다. 일본의 재산을 몰수하여 전쟁 배상용으로 사용해야 한다는 원칙이 이미 정해져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미군정 내부에서도 혼선이 있었는데, 미국 정부의 입장과 미군정의 군령 사이에 표현의 애매함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미군정에서는 일본인 민간 재산에 대해서는 미군정의 허가를 전제로 매매하 허용되었었다.
이는 1907년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열린 제2회 평화회의에서 개정된 [헤이그 육전법규] 제 46조 '적지 사유재산 불가침 원칙'을 의식해서 그렇다. 그래서 어느정도 절충하여 적국의 재산이라도 사유재산의 경우 그 소유권이 존중되어야 함을 원칙을 준수하면서도 일본 재산 동결이라는 워싱턴의 지시에 어긋나지 않은 미군정 고민의 결과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원칙은 곧바로 바뀌었는데, 1)미국은 남한 내 모든 일본 재산을 미군정에 귀속시켜 소유해야된다는 강력한 원칙을 가지고 있었고 2) 남한은 패전국에서 분리된 점령지로, 이 경우 국제법에 명시되지 않은 특수한 경우에 해당되며, 3) 태평양전쟁이 총력전의 성격을 갖고 있기 때문에 사유재산 또한 반민 반관의 성격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또 다른 이유는 바로 남한 내 한국인들의 강력한 반발 때문이었다. 한국인들은 당연히 일본의 재산이 한국의 소유라고 생각하고 있었고, 미국 입장에선 곧 바로 돌입할 소련과의 냉전 체제에서 보다 친미적인 정부를 남한에 세워야했기 때문에 한국인들의 정치적 주장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유재산에 대한 몰수는 이후 한일 회담 당시 일본의 역청구권 주장의 빌미가 되었다.
3부 정부 수립과 귀속재산 처리
사실상 사유재산에 대한 몰수의 책임을 남한 정부가 떠앉으면서, 이후 한일 회담 당시 일본의 역청구권 주장으로 협상 타결에 오랜 시간이 걸리게 된다.
이승만 정부는 48년부터 62년까지 귀속재산을 민간에 매각했는데, 특히 한국전쟁으로 51년 이후 적극적인 매각을 하여, 그 기간동안 인플레이션을 고려하지 않은 금액으로 약 60조원에 이르렀다고 한다.
그러나 이승만 정부의 귀속재산 매각에는 두 가지 문제가 있는데, 1)대규모 귀속공장, 은행 등의 특권을 가진 재산의 경우 민간 불하가 투명하게 처리되지 않았다는 점 2)주로 법인에 해당하는 재산의 경우, 정식 해산/청산 절차를 거치지 않고 매각해버려 이후 법적인 문제를 낳았다는 점이다.
4부 1960년대 이후 재산 처리
정부의 계획대로 1950년대 마무리 되었어야 할 귀속재산은 그 이후에도 불하되지 못하고 남아있었는데, 하나는 한국의 당시 경제규모에 비해 경제성이 없는 재산들, 중공업 공장등을 감당할 수 있는 민간이 없었기 때문이고, 둘째는 휴면 법인들 때문이었다. 특히 휴면 법인의 경우 주주들이 북한에 있거나 그런 경우가 있어 더 어려움이 있었다고 한다.
마치며
미군정은 정치적인 목적으로 귀속재산을 불하했으며, 이는 이후 한일 회담에 여러 문제를 야기하였다.
귀속재산이 한국 경제 발전에 어느정도 영향이 있었는지 명확히는 알 수 없지만, 초창기 면방직 공업 등 한국 경제를 이끌어갔던 공업이 귀속 면방직공장들이었음을 부정할 수는 없다.
신흥 자본가들도 귀속재산을 바탕으로 등장하기 시작했는데, SK, 한화 등이 이때 태동하기 시작한 기업들이다.
느낀점
한국이 마치 아프리카와 같은 최빈국에서 한강의 기적을 통한 엄청난 성장을 이루어 선진국이 되었다는 주장을 당연하다는 듯이 들어왔다. 물론 한강의 기적은 실재하며, 그 기적을 통해 우리나라가 선진국이 된건 사실이다.
그러나 과연 한국이 해방 당시 아프리카와 같은 수준의 최빈국이었을까?
귀속재산에 대한 연구들은, 당시 한반도는(북한 공업지대 포함) 일본에 이은 아시아 제 2의 제조업 강국이었다는 주장을 하는데, 이런 얘기를 들은 나로서는 또 다시 큰 반전을 마주한 기분이었다.
이후 비록 한국 전쟁 때 파괴가 있었고, 북한이 공업지대이긴 했지만, 남한 또한 여러 공장이 있었고 일본이 남긴 적산, 귀속재산이 큰 역할을 하였음을 알게되었다.
SK나 한화 같은 기업들은 자신들의 출발이 귀속재산임을 언급하지 않고 있는데, 일제의 잔재라는 오명을 듣기 싫어서인지, 자신들의 역사를 가리고 있는 기업들이 많아 오히려 귀속재산이 한국 경제발전에 어느정도 역할을 하였는지에 대한 발상을 못했던것 같다.
근데 가장 근본적인 쟁점이자 귀속재산에 대한 인식이 낮은 이유는, 이 책에도 살짝 언급되어있듯이, 귀속재산에 대한 연구와 평가는 바로 '식민지근대화론'과 연결되어있기 때문이다.
일제가 한국을 수탈하기만 했다면, 해방 이후 일제가 남기고 간 재산이 한국에 아무 도움이 안되어야 할 터인데(70-80년대 연구들) 실제 귀속재산이 한국 경제에 영향을 미쳤기 때문에, 일제의 시스템이 한국 근대화에 도움이 되었다는 주장이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뭐 물질적인 재산들이야 어떻게 되었던, 부정할 수 없는 것 중 하나는, 일제 35년을 통해 많은 조선인들이 근대적 시스템을 배우게 되었고, 이를 통해 해방 이후 날아오를 수 있는 멘탈리티와 능력을 갖게되었다는 사실이다.
일제 35년을 빼버린다면, 과연 조선 후기적 마인드로 어디까지 발전할 수 있었을까?
가장 명확한 사례는 바로 북한이다. 같은 민족, 같은 지리, 같은 재산, 심지어 더 많은 공업지대를 가졌음에도, 대런 애쓰모글루 교수의 말대로 왜 남한은 선진국이 되고 북한은 최후진국이 되었을까? 일제 시대를 통해 들어온 근대적 멘탈리티와 테크노크랏들이 그 능력을 펼칠 수 있는 제도가 남한에는 있었고, 북한은 다시 조선으로 돌아가려는 원심력이 더 크게 작용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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