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책

[책리뷰] 소유냐 존재냐 - 에리히 프롬

어빈2 2024. 10. 22. 1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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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에리히 프롬
평점 3
 
 

개요

 
프랑크푸르트 학파의 유명한 학자 에리히프롬의 <소유냐 존재냐>를 독서모임에서 읽게 되었다. 그의 책 <자유로부터의 도피>등에서 보여준 인사이트 덕에 이 책도 상당한 기대를 가진 채 읽게 되었다.

읽고난 소감은, 생각보다 별로라는 것이었다.

책은 총 3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는 사랑, 독서, 학습, 권위 행사 등에서 소유양식을 가진 사람과 존재양식을 가진 사람의 태도가 어떻게 구분되는지를 분석한다. 또한 성경에 드러난 소유양식도 분석하고 있다.

2부는 소유양식과 존재 양식이 무엇인지 설명한다.

3부는 존재양식의 사회가 되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하는지를 서술하고 있다.
 

 
내용
 

한 인간을 개체로 보느냐, 아니면 사회적 산물로 보느냐에 따라서 인간에 대한 관점은 크게 달라진다. 이 책의 저자 에리히 프롬은 “개인과 사회”라는 문제에 접근하면서, 개체로서의 본연의 인간을 그 출발점으로 삼는다.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는 “소유”와 “존재”의 문제에 봉착해 있다고 할 수 있다. 이 책은 독자들에게 그런 문제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를 곰곰이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가 되어줄 것이다.

이 책 「소유냐 존재냐」는, 특히 프롬의 사상세계에 관한 입문서로 적절한 책이다. 저자는 전문적인 학문적 자료를 피하면서 일목요연하고 읽기 쉽도록, 그가 이전의 저술들에서 한층 엄밀하게 (때로는 장황하게) 파고들었던 사유의 과정을 이 책 안에 요약하고 있다. 나아가 새로운 시각에서 간결하면서도 압축된 형태로 자신의 고백의 다양한 단편들을 종합해놓고 있다.……아마도 미래의 학자들은 프롬을-종교전쟁 말기의 저 위대한 휴머니스트처럼-용기 있는 이념을 가지고, 우리 모두가 한층 관용을 알고 도움을 주며 욕구를 모르고 평화를 사랑하는 인간이 되도록 기여한 저 제3의 힘의 대변자의 계열에 넣어 해석할 것이다. 그리고 휴머니즘적 항거파가 뿌리내리기를 기대할 수도 있을 것이다.

- 교보문고 책 소개 펌


 느낀점

 
책에서 저자는 소유 양식과 존재 양식을 구분하고 있다. 교보문고의 책 소개에도 나와있듯이, 한 인간을 개체로 보느냐, 사회적 산물로 보느냐? 라는 관점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여기서 소유 양식이란, 가장 명확한 하나의 단어로 말하면 사유재산권을 뜻한다. 즉 이 책은, 사유 재산권에 대한 비판서이다.

유튜브에서 강신주라는 철학자의 강의를 본 적이 있는데, 그가 말한 것과 유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즉 내가 소유하고 있는 다양한 쓸모가 중요한게 아니라, 나라는 존재 그 자체로서 사랑받을 자격이 있다는 얘기다.

 

물론 강신주의 말에 동의하던 안하던, 우리는 심정적으로 그들에 공감한다.

문제는 그들의 사고방식이 실제로 우리를 그런 방향으로 이끌며, 그것이 과연 옳은 삶이냐는 것이다.

1. 사유재산권에 대한 정의

 
1) 인간의 근본적인 자유의 근간을 이루는 자유권
우리가 경제적으로 독립하지 못하는 한, 완연한 자유를 누릴 수 없음은 다 동의한다. 심지어 자취를 하는 대학생 조차, 월세와 용돈을 부모로부터 받는 한 완전한 독립을 이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이렇게 반박할 수 있다. '그건 자본주의 사회의 물질적 토대 때문에 그런 것이다' 라고.

즉 물질화가 되지 않은 세상이라면, 오히려 사유재산으로부터 해방되고, 정신의 독립이 진정 유일한 독립이라는 것이다. 마치 아서 클라크의 <유년기의 끝>에 나오는 한 차원 높은 수준에서의 인류의 통합처럼 말이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자본주의적 소유와 인간성이 반대된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리고는 마치 에덴 동산이 존재했던 것 처럼 말한다.

인류사의 흐름을 보면, 분명 물질로부터 벗어난 진정한 자유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예를들어 아테네의 민주정을 하던 시민들, 백성을 위해 글자를 만든 세종 등...

과연 그럴까? 그 이면에는 그들이 물질로부터 해방될 수 있게 한 수 많은 노예와 노비들이 있었음을 우리는 늘 간과한다. 노비와 노예가 잘못된 것이라면, 즉 현대사회라면, 사유재산권이 오히려 보호되었을 때 정신의 발전이 가능하다는 점을 부정할 수 없다.

2) 행복추구의 권리
미국의 독립선언서를 보면 행복추구권이 나오는데, 내가 내 행복을 추구하는 것을 국가가 막을 수 없다는 자유권을 뜻한다. 그리고 이는 바로 사유재산권을 뜻한다. 내가 집에서 하루종일 식탁을 닦는 그런 수준의 행복 말고, 내가 행복을 느끼는 무언가를 할 때는 그것이 상당히 자주 소비와 동행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퇴근하고 넷플릭스를 보며 맥주한잔하는 행복감, 사랑하는 사람과 맛있는 것을 먹는 행복, 더 나아가서 열심히 기다리던 것을 얻었을 때의 행복 등, 인간의 행복은 대부분 물질과 연관이 되어있다. 그래서 행복추구권이 사유재산권과 동의어가 되는 것이다.

3) 문명발전의 전제
에르난도 데 소토의 업적 중 탁월한 것은, 필리핀과 같은 분명 자본주의를 하는 나라가 왜 지지리도 못사냐는 것을 밝힌 데 있다.

그리고 그의 결론은 이렇다.

필리핀, 이집트 등 분명 자본주의를 하는 나라들이 발전을 못하는 이유는, 국가가 너무나 많은 규제를 만들어 놓고 사유재산권을 제대로 보호해주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옛날에 본 거라 정확히 기억은 안나는데, 필리핀에서 집을 하나 사려면 동사무소에서 받아야 되는 도장에 너무 많아서 도무지 살 수가 없다는 것이다. 이는 집을 사는것도 파는것도, 부동산을 가지고 사업하는 것 자체를 불가하게 만들기 때문에 자본 축적을 어렵게 만든다는 것이다.

거대한 정부가 사유재산을 강하게 틀어쥐고 있기 때문에 발생하는 비용이 거래의 기회비용을 압도하는 것이다.

2. 존재양식과 소유양식의 현실성
사실 인간은 존재양식과 소유양식 양 면을 다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예를들어 정말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면, 내 자식을 볼 때 우리는 자식의 필요성을 생각하지 않는다. 그들의 존재만으로도 행복감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반면 우리가 가정 외의 곳을 바라볼 때는 특히 '사회적'이라고 불리는 영역에서 강한 소유양식을 지니고 있다.

여기서 비판하는 하나의 지점이 나오게 되는데, 즉 인간이 소유양식과 존재양식 둘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다 없다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이 소유양식과 존재양식 두 가지를 동시에 가지 있고 그것을 인식하는 순간, 소유양식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이다.

예전에 알튀세르의 호명이론을 본 적이 있는데, 간단히 말하면, 지배계급의 이데올로기가 피지배 계급을 착취하기 위한 용도로 사용되는 것을 넘어, 그 이데올로기에 호명되어 지배계급 조차 그 이데올로기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이다.

이처럼 우리가 존재양식과 소유양식을 굳이 구분하여 인식하는 순간, 우리는 두 양식 모두에서 벗어날 수가 없는 것이다.

3. 책 3부에 대한 의견
이 책은 3부에서 완전히 무너지고 마는데, 마치 지젝의 <판데믹 패닉>을 보는 것 같았다.
 
존재양식을 위해 사회를 어떻게 재구성해야 하는가에 대한 구성주의자의 진부한 사회 설계가 장황하게 펼쳐지는데, 이런 식의 사회 설계는 상상으론 재미있지만, 단 한번도 실제에서 성공한 적이 없고 늘 수 많은 사람들의 피를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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