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책

[책리뷰] 판데믹 패닉 - 슬라보예 지젝

어빈2 2024. 10. 22. 1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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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슬라보예 지젝
평점 2
 
 

개요

 
유고슬라비아의 포스트 막시즘 철학자 슬라보예 지젝의 코로나 관련 책이다.

코로나가 한창 유행하기 시작한 판데믹 초기에 쓰여진 책으로, 지구적인 재난에 맞서 강력한 공산 당정치로의 복귀를 역설하는 책이다.

독서토론 책으로 선정되어 읽게되었다.
 

느낀점

 
읽은지 오래 되어 딱히 내용은 기억이 안나고, 느낀점만 간단히 나열하자면...

1. 사실 책을 읽기 전에 큰 기대를 갖고 있었다.

1) 지젝은 조던 피터슨과의 토론에서도 보여줬듯이, 단순 고리타분한 막시스트가 아니라 뛰어난 지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내가 볼 때 조던 피터슨이 완전히 발린 토론이었다), 2) 현대자본주의 사회에는 분명 문제가 있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 다양한 포스트모더니즘, 포스트 구조주의적 분석들이 있으며, 이것들이 완전히 허무맹랑한 소리는 아니라는 점 때문이다.

즉, 지젝은 포스트 막시스트로서, 현재까지도 여전히 살아있는 공산주의 이념이라는 점에서, 막시즘이나, 네오 막시즘이 보여줬던 한계를 극복한 해결책을 어떻게 보여줄지에 상당히 흥미가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의 제시는 당 정치로의 귀환이었다.

 

지구적 재난에 맞서서 백신 개발 등 모든 인류의 역량이 집중되어야되는 프로젝트가 있을 때, 공산당의 강력한 국가중심주의 또는 민주집중제라 불리는, 주권독재가 당 서기로 이관된 사실상 파시즘이라는 해결책을 말한 순간 지젝에 대한 신뢰가 사라졌다.

이번 코로나 사태는 이 블로그에서 몇 번 쓴적이 있지만, 상당한 스캔들이었고, 백신 개발은 사실상 각국 정부의 강력한 인센티브 덕에 가능했다. 사명감 때문에 백신을 만든게 아니라, 철저한 자본주의 논리에 의해서 백신들이 신속하게 개발된 것이다.

번외로 지금 보면, 백신을 만들어서 한탕 했던 제약사들이 잘 나가고 있는가? 화이자는 비아그라를 만든 과거의 영광은 잊은 채, 백신으로 한탕 하고 끝이다. 아스트라제네카, 얀센은 어떤가? 반면 백신과는 별 연이 없었던 노보 노디스크는 위고비와 삭센다를 만들어 1조원이 넘는 새로운 시장을 창출하여 세계 제약계에 우뚝 서있다.

국가주도적인 계획은 지속가능성이 없으며, 장기적으로 기업의 경쟁력을 고장나게 만들고, 그것이 심지어 사명감이나 도덕성에 의존하는 한, 소련의 재현은 불가피하다.

2. 지젝의 태도는 분명 지적받아야 한다.

독서모임에서도 나온 말이지만, 이 책은 판데믹이 막 시작했을 때 나온 책이다. 상당히 이른 감이 있다.

그래서 코로나에 대해 많이 밝혀진게 없던 시점이라 이 책에서 예지한 대로 된건 별로 없다고 봐야 할 것이다.

그럼 왜 이렇게 급하게 책을 후다닥 냈을까?

이 책 곳곳에서 은연중에 드러나는 지젝의 태도는, 독자들로 하여금 마치 이런 지구적인 재난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 처럼 생각하게 만든다. 즉 자신의 평소 생각인 당정치로의 귀환에 딱 맞다고 생각되는 재난이 일어나자 기다렸다는 듯 책을 성급하게 낸 것이다.

마치 농림부 공무원들이 농부들 파업하면 내년도 예산 더 늘거라 기대하고 킬킬거리는 것 같다.

3. 도덕과 미덕의 물질주의화는 극복 가능한가?

우리가 미덕이라 여기는 다양한 분야들이 물질주의화 된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있다. 진부한 예시지만, 돈으로 안되는게 어딨어? 식의 사고방식 말이다.

이 책에서 지젝이 언급한 이탈리아 막시스트 아감벤의 경우, 비록 그의 주장은 나이브하지만, 지젝의 것보다는 호소력이 있는게, 인간의 인간다움을 회복하고 에토스를 만들어가자는 것은 분명 우리가 공감할 수 있는 주장이기 때문이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작품도 그렇다. <원령공주>를 보면, 자연과 공존하는 인간이 만들어내는 미덕들이, 자연의 현신들을 학살하는 에보시의 태도와 대조되면서 문명이 미덕을 어떻게 파괴하고, 극복의 길을 제시하려는 의도에 우리는 공감하게 된다.

 

* 번외로 재미있는 얘기라 언급하자면, 원령공주에서 공주는 죠몬 인이고, 에보시는 가야계라는 설이 있다(가야가 철을 다루는 종족이었기 때문). 일본의 뿌리가 가야와 백제인 만큼, 한반도 도래인이라는 아이덴티티를 극복하고 일본 본유의 죠몬으로 돌아가자는 의도가 담겨있다는 분석인 것이다. 실제로 죠몬인은 아프리카 북부에서 1차로 나온 사피엔스인 만큼, 2차로 나온 한반도 아프리카 사피엔스랑은 완전히 다른 모습을 하고 있다.

그렇다면 과연 우리가 현재 누리고 있는 충분히 자본주의화 된 세상은 미덕이 없을까? 요즘 느끼는 것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물론 고리타분하게 시장이 도덕을 만들어낸다는 주장을 하는게 아니다.

역사적으로도 많이 드러났지만, 인간은 그 본성적 모습으로 도덕을 구매하는 성향이 있다.

전쟁을 통해 수 많은 정복 위에 세워진 나라도, 그 다음 세대로 넘어가면 문명이 꽃피고 예술과 철학이 발전한다.

예를들어, 할리우드 영화 중에서는 분명 재미만을 위주로 한 영화도 많지만, 상당한 철학을 담고 있는 영화가 있음을 부정할 수 없다.

제임스 카메론의 <아바타>를 보면, 분명 자본주의 시장에서 탄생한 거대한 영화지만, 그 영화엔 '생태주의', '자연정령주의'라는 감독의 철학이 자리잡고 있다. 즉 할리우드의 돈이 감독의 철학을 구매한 것이다.

예술은 어떨까? 하이든이나 바흐 등 음악 대가들의 시대, 또는 르네상스 시절의 피렌체와 로마 등을 보면, 상당히 많은 미술가, 음악가들이 주문제작 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피렌체는 각 유럽의 십일조가 모이는 곳이었기 때문에 돈이 풍부했는데, 돈 많은 교회가 미술을 구매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처럼 물질은 도덕을 구매하고, 그렇게 구매된 도덕이 시대의 관념을 이끌어나가는 경향이 있다.

여기에 시장적 특성인, 즉 물건이 선택되는 방식에 대한 자유로운 경쟁이 나쁜것은 밀어내고 좋은 것을 남기는 특성이(그래서 상품을 영어로 goods라고 한다), 보다 나은 미덕을 우리에게 보여주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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