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리뷰] 요리본능 - 리처드 랭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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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리처드 랭엄
평점 9
개요
2009년에 출간된 이 책은 사실 우리가 생각하는 요리와는 별 상관이 없는, 인류 진화가 화식으로부터 비롯되었다는 대담한 가설을 제기하는 인류진화과학 책이다.
놀라운 점은 리처드 랭엄 교수가 전문 인류진화과학자가 아닌 침팬치 연구로 유명한 동물학 전문가라는 건데, 침팬치 관찰에서 인류 진화에 대한 큰 힌트를 얻어 책을 썼다고 한다.
좋은 연구서들이 늘 그렇듯이, 단 한 문장을 증명하기 위해 긴 내용과 엄청난 주석들을 달고 있는데, 이 책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이러하다.
어느 시점에서 인류가 크게 진화했는데, 그것은 170-190만년 전 하빌리스에서 호모 에렉투스로의 진화고, 이유는 인류가 불을 이용하여 음식을 익혀 먹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내용
총 8장으로 이루어져있다.
1-5장은 왜 자신이 이런 가설을 주장하는지, 화식 가설이 무엇인지 설명하고, 6-8장은 화식이 가져온 인간의 사회적 변화를 설명하고 있다.
1장 생식주의자를 찾아서
생식 하는 사람들과 익힌 음식을 먹는 사람들의 영양상태를 비교하면서 화식의 에너지 효율이 좋음을 밝히고 있다.
그리고 이는 지구에 사는 어느 부족이더라도 공통적으로 갖는 특성이라는 것을 밝히고 있다.
2장 요리하는 유인원
익힌 음식이 진화에 있어서 어떤 시점에 자연선택 되었는데 그 효과를 설명하고 있다.
1) 익힌 음식이 날것보다 소화하기 쉬우며,
2) 소화가 쉬운 덕에 오랫동안 음식을 씹고 있을 필요가 없어 다른 유인원에 비해 작은 입, 작은 창자 등의 신체를 갖게 되었다.
3장 가열 조리의 엄청난 효능
잘게 부수어 부드럽게 만든 음식과 익힌 음식이 인간 동물 할것 없이 열량효율이 좋음을 설명한다.
4장 요리가 처음 시작되던 날
고고학적 증거를 통해 어느 시점에서 불을 이용하여 음식을 익혀먹었는지 밝히고 있다. 저자는 이를 호모 에렉투스 때 부터라고 한다.
실제로 호모 에렉투스 때 유의미한 진화들이 있었는데, 어깨 뼈와 발가락이 나무 타는데 적합치 않게 바뀌었고, 후두가 아래로 내려가기 시작했으며, 뇌가 두 배 정도로 커지기 시작했다.
5장 화식, 뇌 성장의 원동력
뇌가 커진 주요한 이유가 화식임을 밝히고 있다.
이 부분이 참 재미있었는데, 인간이라고 해서 다른 포유동물에 비해 기초대사율이 별 다른게 없다고 한다. 각 장기기관에서 사용하는 열량도 비슷하고, 체중의 차이만큼 장기기관의 크기 차이가 있을 뿐 사용하는 에너지는 비슷하다고 한다.
심장, 간, 폐 등 인간과 다른 포유류들이 사용하는 에너지가 비슷하다면, 왜 인간의 뇌가 커졌을까?
바로 화식으로 인한 소화기관의 소형화 때문이라고 저자는 주장한다. 다른 기관의 열량 소모는 비슷하지만, 소화기관에서 사용되는 열량을 줄임으로써, 그 남는 에너지가 뇌 크기를 키우는데 쓰였다는게 저자의 핵심 주장이다.
6장 요리가 인간을 자유롭게 하리니
이 부분부터는 인간의 사회적 발전을 다룬다. 화식을 함으로써 음식을 씹고 소화하는 시간을 획기적으로 줄이게 되었고, 이것이 인간에게 자유시간을 줬다고 주장한다.
7장 요리하는 인간의 결혼생활
어느 문화권이나 요리는 여성의 몫이었는데, 즉 남성이 수렵을 하러 나갔다가 돌아와서 안정적인 식사를 할 수 있게 하는 것이 여성의 주요한 업무중 하나가 되었으며, 이를 보호하고 사냥을 통한 단백질을 공급하는 것이 남성의 몫으로 서서히 굳어지면서, 남성 종속적인 가정 문화가 정착했다고 한다.
8장 요리, 인류 진화의 불꽃
앞선 내용을 정리하는 장으로, 불로 음식을 익혀먹기 시작하면서 인간들이 같이 모여 식시하기 시작했으며, 이를 통해 의사소통이 발전했음을 화식이 인류 진화의 불꽃인 또 다른 이유로 소개하고 있다.
느낀점
인류 진화에 있어서 화식 가설은 놀라운 이론으로, 어쩌면 인류 진화의 비밀을 푸는 획기적 열쇠가 될 수 있다.
호모 하빌리스에서 호모 에렉투스로 넘어갈 때, 현대 인류에 상당히 적합한 진화가 많이 일어났다.
몸에 털이 없어졌으며, 피부가 검게 되었고, 모근 땀샘이 외분비 땀샘으로 교체됨으로써 뇌가 발생시키는 열을 식힐 수 있는 시스템이 갖춰지는 시기였다. 후두가 내려가 발성이 풍부해졌으며, 발가락이 직렬이 되고 허리가 얇아져 장거리 달리기에 적합한 몸으로 바뀌었다.
저자는 이러한 변화의 핵심적 요소로 바로 불에 익혀먹는 것을 주장하고 있다. 그리고 이는 정답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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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호모사피엔스만 살아남았는가는 이 책에서 다루고 있지 않다. 다만 어느 시점에서 유인원이 인간과 달라졌는가는 이 책을 통해 알 수 있다.
이 책은 호모 하빌리스라고 하지 않고 하빌리스라고 하는데, 즉 저자는 하빌리스를 호모 속으로 보지 않는 것이다. 실제로 하빌리스의 실현 모습을 보면 오스트랄로피테쿠스와 비슷하게 침팬치의 모습을 하고 있다.
그러나 에렉투스는 다른데, 에렉투스는 지금의 아프리카 인과 비슷한 모습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 어느 시점에서 에렉투스로 진화할 수 있었을까?
호모 에렉투스가 하빌리스와 크게 다른 점을 몇개 꼽아보자면
1) 두뇌 크기가 커짐
2) 전면에 날을 가지고 있는 에슐리안 스타일의 석기를 만듦
3) 털이 없어지고 외분비 땀샘으로 교체되었으며 뇌로 냉각수를 보내는 시스템이 생김. 또한 피부가 검어져서 체온조절에 능하게 됨
4) 장거리를 뛰고 걸을 수 있는 능력이 생김
5) 후두가 아래로 내려감으로써 발성이 풍부해지고 소통 능력이 발달함
불로 익혀먹었기 때문에 창자가 작아져서 장거리를 뛰고 걸을 수 있는 능력이 발달했으며, 소화에 에너지를 줄임으로써 뇌의 크기를 키웠으며, 뇌에서 발생하는 열을 냉각하기 위해 털이 없어지고 외분비 땀샘이 생겼다고 주장할 수 있다. 또한 익혀먹음으로써 불 주변에 같이 모여 식사하고 휴식할 수 있게 되었으며, 이것이 의사소통 능력을 발달시켰다라는 주장도 가능해진다.
더 나아가, 에렉투스는 에슐리안 스타일의 손도끼를 100만년이 넘도록 사용하였는데, 익힌 음식으로 자유시간이 생기면서 보다 사냥하기 어렵고 시간이 걸리되 고급 단백질을 제공하는 동물들을 사용할 수 있는 사냥 도구를 만들었다고도 말할 수 있다.
에슐리안 스타일은 전면부가 전부 날인 일종의 양날 석기로 손으로 잡고 쓰면 손이 벨 수 있다. 그래서 사냥감을 때려잡는 근접용 무기가 아니라 던져서 꽂히게 하는 투척 무기라는 설이 있다. 빠르고 강력한 동물도 잡을 수 있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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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아쉬운 점으론, 후반부 인간의 사회사를 설명할 때 화식으로 인해 가정이 생긴다는 말을 하고 있는데, 이는 무리수로 보인다.
왜냐하면, 170만년 전 호모 에렉투스가 아프리카에서 사피엔스로, 유럽에서 네안데르탈로 진화하게 되는데, 네안데르탈은 가정을 만드는데 실패하였기 때문이다.
불을 이용하여 음식을 먹는데 왜 사피엔스는 가정을 만들고 네안데르탈은 실패했을까? 이는 뇌의 시냅스의 차이 때문이라는 얘기가 정설로 보인다.
네안데르탈의 유전자를 보면 그들은 남에게 공감하거나 남을 설득할 수 없고, 조직을 만들거나 사회를 구성할 수도 없었다고 한다. 즉 같은 화식을 했어도 사피엔스는 가정과 공동체를 만들 수 있었던 반면 네안데르탈은 실패한 것이다.
이를 유발 하라리는 공통된 상징을 만들어서 같이 믿을 수 있는 인간의 상징 능력이라고 불렀는데, 네안데르탈은 그 상징능력이 없었던 것이다.
하빌리스에서 화식을 통한 큰 변화가 있었고, 이후 에렉투스에서 무언가 새로운 변화가 비로소 현생인류를 만들었는데, 저자는 두 단계의 인간 진화의 중요한 계단을 하나로 놓는 실수를 범한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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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내용과는 별개로, 이 책의 제목은 심각한 오류를 담고 있다.
catching fire는 보통 불을 피우다라고 번역되는데, 헝거게임의 캣칭 파이어라는 제목에서 보듯이, catching은 전염성 있는, 번져나가는이란 뜻도 가지고 있다. 즉 헝거게임에서는 '혁명의 불길이 번져나가는'이란 뜻으로 사용된 것이다.
이 책도 인류의 진화 과정이 불을 통해 전 지구로 번져나갔음을 보여주기 때문에 이를 '요리 본능'이라고 하는 것은 심각한 오류라 할 수 있다.
또한 이 책은 '화식'을 주장하지 엄밀히 말해 요리를 주장하지 않는다. 뒤에 옮긴이 후기에서도 옮긴이가 번역할 단어 선택에 어려움을 겪었음을 고백하는데, 즉 스시나 사시미 같은 날것은 비록 요리일지라도 불로 익히지 않았기 때문에 이 책에서 주장하는 바와 전혀 맞지 않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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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 사방에 최재천 교수가 추천사를 써 놓는 것은 이제 그만 봤으면 한다. 그는 이미 스콜라가 아니며, 대중 엔터테이너며, 과학의 많은 부분을 인간의 성별 차별로 환원하여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