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리뷰]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 김초엽
저자 김초엽
평점 3
개요
독서토론 책으로 선정되어 읽게 된 책이다. 평소에 최근 한국 문학계에 불만을 갖고있던 터라 달갑게 다가온 책은 아니었다. 그래서 아무런 기대를 하지 않았고 하지 않은 만큼만 기능하는 책이었다.
내용(스포일러)
7개의 단편을 모아놓은 책이다. 장르 특성상 스포일러가 될 수 있는 경우가 다분하여 간단히 요약만 하자면...
1) 순례자들은 왜 돌아오지 않는가
어떤 마을에서 인생에 한번 순례를 가는데, 마치 성인식 처럼, 사람들이 순례에서 돌아올 땐 절반 정도만 돌아온다. 도대체 뭐가 있기에 절반만 올까? 이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이야기.
2) 스펙트럼
처음으로 외계 문명을 발견했지만 비협조적인 태도로 소통하지 못한다. 그런데 우주비행사였던 할머니가 자신이 외계 문명과 첫 조우를 한 인간이라고 밝힌다. 그런데 외계 문명의 위치가 어딘지 정확한 얘기를 꺼리는 할머니...도대체 어떤 비밀이 숨겨져 있을까?
3) 공생가설
아기의 울음소리를 분석하는 기술이 나왔다. 그러나 단순히 배고픔, 슬픔 등 일차원적 감정만을 나타낼 것이라 생각했던 아기의 울음소리는 엄청나게 고차원 적인 소통이 이뤄지고 있었는데...
4)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낡은 우주 정거장에서 하염없이 무언가를 기다리는 할머니. 한 젊은이가 기다림의 이유를 찾기 위해 할머니를 찾는다.
5) 감정의 물성
만지면 원하는 감정을 느낄 수 있는 물질이 발견되고 판매되기 시작한다.
6) 관내분실
더 이상 장례식은 없다. 기술의 발전이 인간의 뇌를 스캔, 디지털화 하여 죽은 사람을 가상현실로 구현할 수 있게 되었다. '마인드'라 불리는 죽은 사람의 뇌 스캔 데이터는 '도서관'이라 불리는 곳에 안치되는데, 유가족이라면 누구나 가서 만날 수 있다. 그런데 어느날 도서관에 안치되어있던 엄마가 사라지고 이를 찾아가는 이야기.
7) 나의 우주영웅에 관하여
나의 우상 이모를 따라서 우주비행사가 된 나. 이모가 우주비행에 실패하여 죽은줄만 알았던 나는 뜻밖의 진실을 알게 되는데...
느낀점
워낙 유명한 책이라 장점은 쉽게 찾을 수 있을것 같으니 내가 느낀 단점만 적어보려고 한다.
1) 이 책은 sf소설의 탈을 쓴 사회 비판 소설이다. 그것도 미숙한 형태의, 현재 한국 문학계의 흐름에 부합하는 사회 비판 소설이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별 천착 없이 그냥 사회 문제를 지나가는 설정 중 하나로 삽입해놓고 있기 때문이다. 순수 sf로 느껴진 것은 <공생가설> 뿐이었고 사실상 그게 제일 잘 쓴 단편이기도 하다.
<순례자들은 왜 돌아오지 않는가>는 차별 문제를, <스펙트럼>은 다양성과 원시 공동체에 대한 향수를,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은 사회 발전에서 소외되는 사람들을, <감정의 물성>은 현대사회에 메말라가는 감성을, <관내분실>은 최진실이 나오는 90년대 드라마같은 가족문제를, <나의 우주영웅에 관하여>는 여성의 사회진출과 잠정적 우대조치 문제를 다루고 있다.
사실 여기서 문제를 다루고 있다고 하기도 민망한게, 이게 '문제'로서 '다뤄'지는게 아니라 설정으로서 지나가버리기 때문이다. 물론 작가는 그냥 정말로 현실에 존재하는 현상을 일상적으로 포함시키려 한 것 뿐일수도 있다. 그러나 최근 한국 문학계의 동향을 보면, 그렇지는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윗 내용을 좀 더 디테일하게 예를 들면, <순례자들은 왜 돌아오지 않는가>는 일종의 자본주의 양극화와 계급화에 대한 메타포다. 신인류의 등장과 그들과의 계급 차이, 극단화라는 sf 의 탈을 쓰고는 있지만, 주인공이 장애를 갖고 계속 차별받는 내용이 나오며, 신인류를 '재벌'로 바꿔놓으면 큰 무리없을 정도로 내용이 이해된다.
혹자는 '신인류가 등장하면 어떻게 될까?' 식의 영화 <엑스맨> 류의 주제를 도출할 수도 있겠지만, 그러기엔 신인류와의 본질적인 갈등이 나오지 않는다는 점에서 이는 단순한 설정일 뿐 말하고자 하는 바는 다른 곳에 있음을 느낄 수 있다.
좀 더 독하게 말하자면, <스펙트럼>이나 <관내분실>의 경우도 영혼 동일성이라는, 즉 영혼은 존재하는가, 존재한다면 어디에 존재하는가와 같은 본질적인 물음을 제기할 수도 있겠지만, 이런 책에 이 정도의 물음을 해준다는것 자체가 모욕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2) 어디선가 모티브를 따온게 많다는 느낌이 들었다. <공생가설>은 아서 클라크의 <유년기의 꿈>을, <관내분실>은 애니메이션 <공각기동대>를, <감정의 물성>은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뇌>를, <순례자들은 왜 돌아오지 않는가>는 숱하게 널려있는 일본 만화가 떠올랐다.
좀더 자세히 예를들어, <관내분실>의 경우 '마인드'가 주된 소재인데 <공각기동대>에서 다루고 있는 '고스트'에 대한 설정의 표피적인 형태라는 느낌이 들었다. <공각기동대>의 영어 제목은 <Ghost in the Shell>인데, 즉 육체라는 껍데기 속에 영혼이 있느냐, 더 나아가 인간의 의식이라는게 존재하는가에 대한 본질적인 물음을 던지고 있는 애니메이션이다. '마인드'도 인간의 뇌를 스캔하여 데이터베이스화 하여 가상현실로 구현한 것이라는 설정이다.
그러나...영화 <채피>처럼 인간의 뇌를 디지털화 하여 이전시킬 수 있는가에 대한 고민과 그렇게 형성된 디지털 뇌는 과연 영혼을 갖고 있는가라는 스토리를 통해 도출될 수 있는 철학적인 문제는 다 제쳐놓고 죽은 엄마와의 관계를 엮어서 감정만을 앞세운 값싼 감동전개로 느껴졌다.
<공각기동대>에서 말하고자 하는 인간 의식에 관한 '영혼 이론'과 '번들 이론'의 고민은 무엇인가 등을 기대했다면 완전히 실망스러운 소설이 되는 것이다.
3) 문체가 상당히 일상적이어서 평이한 소설이 되어버렸다. 읽는 중에 이해가 안되어 다시 읽어야 하는 문장이 없었고, 또한 읽고 나면 기억에 남는게 없다. 대부분 문장과 단어가 음미할 수준의 완성도를 보여주는 것이 없고 그렇다고 몰입을 유도하는 치밀하고 설득력 있는 과학적 설정이 있는것도 아니라, 마치 인터넷 '웹 소설' 을 본것과 같기 때문이다.
그래서 독서토론 할 때도 '어떤 에피소드가 기억에 남냐'는 질문에 어떤 에피소드의 제목을 말하면 그게 무슨 내용이었는지를 모두 책을 펴고 다시 찾아보는 진풍경이 벌어지기도 했다. 남는게 아무것도 없었기 때문이다.
4) 이거는 평소 sf 장르에 관심이 많은 사람한테 벌어지는 현상이기도 한데, 대부분의 내용이 교과서적 전개를 보이고 있고 사실상 뻔한 클리셰들이라 내용들이 쉽게 추측되었다.